출사 기록/충청 181

중요민속자료로 등록된 보은군 선병국 가옥

시냇물이 양쪽으로 흘러 육지속 섬과 같은 곳에 위치한 선병국 가옥은 입구에 소나무 숲이 찾는 이를 맞이한다. 1984년에 중요민속문화자료 제134호로 지정된 고택이다.고종 40년(1903년)에 보성 선씨씨 가문의 선영홍이 이곳에 정착하고, 1919년부터 1924년까지 아들 선정훈과 함께 지은 집이다.이때 도편수로 참여한 이는 궁궐 목수였던 방대문이라고 한다. 전통 한옥의 양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만, 개화기 일본 등의 영향을 받은 개량식 한옥으로로,제수채와 사당을 연결하는 복도채를 지니고 있다.현재는 안채, 사랑채, 사당 등이 남아있다. 이곳의 장맛은 꽤 유명하다고 한다.직접 담은 장을 판매도 한다는데,다음에는 한번 사와볼까... ========================== | 불펌 금지 | ====..

신두리해안사구 뒷편, 황촌리 해변

신두리해수욕장과 신두리 해안사구는 꽤 여러번 다녀온 듯 싶다. 갈 때마다, 해안사구 저 뒷편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했는데, 드디어 가봤다... ^^; 한적한 바닷가...아무 것도 없다.그래서 좋다. 간간이 트래킹하는 이들이 지나갈 뿐이다. 하지만, 버려진 창고, 소나무 길...나름 또 다른 재미가 숨겨진 곳이다. 암만해도 앞으로 신두리를 가게 되면 항상 함께 들를 듯 싶다... ========================== | 불펌 금지 | ==========================

태안 해녀마을

태안에도 해녀가 있나보다... 구례포해수욕장 옆쪽으로 해녀마을이란 표지판이 있다.먼동해변과는 언덕 하나 사이에 있다. 해녀마을이란 이름이 붙은 걸로 보아, 해녀들이 사는 듯 한데, 정작 해녀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보다는 그냥 펜션의 느낌... 예전에는 제주에만 있던 해녀들이 요즘은 서해, 남해, 동해에 모두 있다.대개는 제주출신으로 원래 해녀였다가, 뭍으로 와서 계속 해녀생활을 하는 것으로 들은 적이 있다. 작은 해변이 바로 앞에 있지만, 해수욕장으로는 조금 적합지 않은 듯 싶다. 아마도 낚시하는 이들이 많이 찾지않나 싶다. ========================== | 불펌 금지 | ==========================

캠핑과 해수욕을 함께하기 좋은 먼동해수욕장

태안 구례포해수욕장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먼동해수욕장이라는 작은 해수욕장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해수욕장보다는 캠핑장으로 더 많은 이들이 찾는 듯 하다. 철지난 바닷가에 캠핑을 온 이들이 제법 눈에 띈다.캠핑오는 이들을 위한 화장실도 있고... 나무 한그루가 눈에 띈다. 저 나무와 함께 담는 일몰이 멋지다고 안내판이 있다.하지만, 일정이 있는 관계로, 다음을 기약하며... ========================== | 불펌 금지 | ==========================

김장생이 후진을 교육하던 임리정

죽림서원 옆의 대나무숲 계단으로 오르면 나타나는 낡은 기와집이 하나 있다. 바로 임리정이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임리정에서,최명길, 송시열, 등의 스승이었던 김장생이 후진을 교육하였었다고 한다. 임리정 바로 옆에 무너진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와서, 그곳에 몇장..... ========================== | 불펌 금지 | ==========================

강경노동조합 건물 앞에서 점프놀이

지금은 쇠퇴했지만, 과거에는 번화했던 강경을 엿보게 하는 곳이 강경노동조합이다.일제강점기 시절, 당시 내륙의 수산물 공급과 유통의 중심이었던 강경에는 하역작업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노조가 있었다. 1925년에 이들이 지은 노조 건물이 강경노동조합 건물이다. 한때 조합원이 3천명에 이를 정도의 대규모 노동조합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2층으로 만들었었는데, 관리부실로 2층이 무너져, 현재는 1층만 남아있다.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건물 안은 텅 비어있어, 그리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때마침 눈에 띈 바로 앞의 철문에서 점프놀이나... ^^;;; 위의 사진을 갖고, 뽀샵으로 조금 장난을.... ^^;;; ========================== | 불펌 금지 | ==================..

장항의 폐양조장과 그 주변에서...

초등학교때 교과서에서 배우던 장항... 장항제련소로 유명했던 장항은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속된 말로, 잘 나가는 도시였다. 이곳에 있던 대동양조장도 꽤 잘 나가는 양조장으로| 70년초까지도 잘 나가던 양조장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이름도 잊혀져버렸지만..... 옛 영화가 사라진 폐양조장은 이제 간판도 없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래도 아직 땅은 주인 소유인 듯 싶다. 주인께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서 살펴봐도 이제는 옛 양조장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세월무상..... 양조장이 있는 동네를 두리번 거렸다.추운 날씨에 불편한 몸으로 어디를 가시는지, 할머니께서 걸음이 무겁다..... ========================== | 불펌 금지 | ==========================

어릴적 책에서 읽던 장항제련소

이제는 장항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도 없지만, 우리 초등학교때만해도, 장항 제련소가 교과서에 실려있었다. 그래서 장항하면 제련소가 떠오른다. 1936년 비철금속 제련소로 지어진 장항제련소는 광복 후에도 마땅한 산업시설이 없던 우리나라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현재는 LG메탈 장항공장으로 바뀌어 여전히 가동중이다. 마치 고래등같은 언던 위에 굴뚝이 솟아있다. 제련소의 연기를 쉽게 빼기위해 언덕위에 굴뚝을 만들었다고 한다. 바로 뒤로는 바다가 있다.맞은 편 군산이 보이는 곳이다. ========================== | 불펌 금지 | ==========================

강경의 죽림서원

강경 죽림서원은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등의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인조 4년(1626년)에 세워진 서원이다. 처음에는 이이, 성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당시에는 황산사라고 불리었고, 이후에 황산서원이라 불리었다. 이후, 김장생이 추가되었고, 현종 6년(1665년)에 임금이 '죽림'이라는 이름을 받아, 이름이 죽림서원이 되며, 조광조, 이황, 송시열의 위패가 추가되었다. 대원군 시절에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가, 1965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문이 굳게 닫혀있어, 들어가지는 못하고, 담장 너머로만 볼 수 있었다. ========================== | 불펌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