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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송탄이라고 알려진 평택시 신장동 송탄은 일명 존슨탕이라고도 불리는 부대찌게가 유명하다. 물론, 의정부 부대찌게도 유명하다. 부대찌게가 유명한 이유는 이곳에 미군부대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햄, 소세지, 등을 넣고 찌게를 끓인 것이 부대찌게니까... 어렵던 시절을 대표하던 음식이 지금은 대표적(?)인 서민음식이 되었다. 송탄에는 아직도 미군부대가 있다. 원래 이곳은 민가가 10여채도 안되는 작은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51년 7월 오산비행장으로 알려진 미군 비행장이 들어서며, 국내에서 가장 큰 미군기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행정구역상 오산은 아니다. 경기도 평택시 신장동이다. 그리고, 이 주변은 송탄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다. 관광특구라.... 조금은 어색하다. 대부분의 미군기지 주변이 그러하듯, 이곳.. 더보기
남한강변의 신륵사 대부분의 절들은 산 속에 있다. 그래서 산길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남한강변에 있는 여주 신륵사는 주차장에서 절까지 그냥 평지다. 그래서 내게는 딱 맞는 절이다... ^^;;; 여주 8경의 하나인 신륵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정확지는 않다. 하지만, 고려말 우왕시절에는 200여칸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에는 꽤 큰 사찰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담은 일몰사진,그리고 겨울의 일출과 상고대 사진을 보았지만, 일출은..... 내게는 조금 힘든... ^^;;;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명성황후만큼 평가가 오락가락하는 인물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어릴 적은 대원군을 높게 평가하고, 그의 정적인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부르며, 상대적으로 안좋게 평가하는 것을 교과서에서 배우며 자랐는데, 언젠가부터,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여장부로 그려지니 말이다. 뭐, 결국은 권력다툼 아니었을까? 그걸 포장하는 이들에 따라서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하는 것 같다.뭐, 민씨집안에도 민영환같이 자결까지 하며 항거한 사람도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호의호식한 인간들도 많으니 말이다.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는 그녀가 태어나 8살때까지 살던 곳이라고 한다. 원래 안채만 남아있던 것을 1996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바로 옆에는 기념관도 있다. 근데, 원래 명성황후가 어릴 적부터 대원군 집에 드.. 더보기
여주 신륵사 맞은편의 강변유원지 여주 신륵사의 남한강 건너편에 강변 유원지가 있다. 여주강변유원지, 혹은 은모래유원지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캠핑장과 함께, 여주시민들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운동시설과 놀이공원 등이 있다. 최근에는 남한강 역사문화체험길인 여강길이라는 트래킹 코스도 생겼다. 신륵사에서 일몰을 담을 수도 있지만, 이쪽에서도 일몰을 담는 이들이 꽤 있다. 하지만, 최근에 4대강 사업 이후, 강변이 정리되어 강변에 가까이 가기 어려워, 예전같은 느낌으로 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흔적만 남은 조선 최대의 사찰, 회암사 경기도 양주에 있는 회암사는 폐사지이다. 지금은 그 옆에 다시 같은 이름의 사찰이 들어섰지만, 원래 이곳은 절터만 남아있던 곳이다. 예전에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용의 눈물'이나 '여인천하'에도 등장했던 회암사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언제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고려 충숙왕때 중창되고, 우왕 떄 중건된 회암사는 대규모 사찰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묵던 곳이기도 했던 회암사는 조선 초기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이성계가 자주 들렀던 곳이기에, 회암사의 구조는 일반 사찰과는 달리,궁궐과 비슷한 구조를 지녔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물론, 효령대군도 이곳에 머물렀었다고 하며, 세종 때의 기솔에 의하면, 1만평의 경내에 250명의 승려가 머물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성.. 더보기
동강의 안쪽 깊숙히 숨어있는 거북이마을 동강의 거북이 마을...어느 잡지에 이곳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은 오지에 숨어있는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오지는 오지다. 주변에 민가만 띄엄띄엄 몇 채 있을 뿐, 그 흔한 가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영화 '선생 김봉두'를 촬영했다고 하니, 그 많은 촬영장비를 이끌고 여기까지 와서 영화를 찍은 그들도 참 대단하다. 연포분교는 이미 폐교되었다. 지금은 마을에서 관리하며, 민박으로 사용된다.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가게에서 음식을 시키면,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도 한다. 메뉴는???메뉴판 같은 것도 없다.닭도리탕을 시켰다. 1시간에서 1시간반을 기다리라고 한다.주문받고, 이제부터 닭을 잡아서, 털 뽑고, 닭도리탕을 만든다고 한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찾아가던 청평사 학교때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가던 청평사... 하지만, 이제는 차를 운전해서 갈 수 있다.화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옛 추억을 생각하며 들렀다. 청평사는 원래 고려 광종때 창건되었다고 한다.처음에는 백암선원이라고 불리었으나, 이후 폐사되었다가, 고려 선종때 이자현이 이곳에 들어와 절을 다시 짓고 문수원이라고 이름을 짓고 선(禪)을 즐겼다고 한다. 이때부터, 주변에 호랑이와 이리가 사라져 평화롭게 되었다고 하여, 청평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기억에는 배에서 내려서 금새였던 것 같았는데, 아니네..... 1Km 가량 계곡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수몰위기의 문화재를 이전/복원한 청풍문화재단지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게 된 수몰지역의 문화재들을 이전/복원한 문화재단지이다. 충주호 바로 옆에 조성된 이 곳에는 원래 청풍면에 있던 금남루, 응청각, 청풍향교, 등의 옛 건물들이 이사와 있다.하지만, 원래의 자리를 벗어난 이들의 모습은 웬지 어색하게 보인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짜장면의 원조, 인천 차이나타운 전세계에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물론, 북한에도 없겠지만, 거기야 원래 그런 동네고... 중국 영향권에 있었던 한반도에 차이나타운이 없다는 것은 아마도 외국인들이 생각할 때는 이상하게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차이나타운이 원래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서울에도 예전에는 차이나타운이 있었다.60년대에만해도, 명동 화교학교 근처와 명동일대에는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중국집들이 많았다. 그러나, 외국인의 재산권을 법적으로 제한하며, 중국인들이 이 나라에서 살기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화교들은 하나 둘 이 나라를 떠났고, 차이나타운은 사라져갔다. 아직도 미국에서 중국집에 가면, 한국출신 화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참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그러다가, .. 더보기
비오는 날, 한택식물원에서... 한택식물원을 가기로 한 날, 비가 온다..... ㅠㅠ 하지만, 비가 와도 간다... ^^;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택식물원은 용인시에서는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안성과 가깝다. 그래서, 안성 출사길에 들르기로 했다. 한택식물원은 1984년에 개원된 국내 최대의 사립식물원이다. 비봉산 자락의 약 20만평의 식물원은 희귀식물부터 들꽃까지 약 9,000여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비가 오는 탓에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열성적인 분들은 항상 있다... 비가 와도, 너무 온다.결국 실내로 피신.... 그래도 비는 안 그치고.....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개항당시의 건물과 일본식 거리가 있는 인천 개항누리길 1875년 운양호 사건으로 조선이 강제로 개국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개항한 곳이 인천이다.그런 이유로, 인천에는 개항과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특히, 원래 일본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던 인천 중구청 건물을 중심으로 그 일대에는 적산가옥이라고 불리는 옛 일본식 건물들과 현재는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는 옛 은행건물 등이 아직 남아있다. 예전에는 일본식거리, 개항거리, 등으로 불렸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무슨무슨 누리길이 유행해서 그런지, '인천 개항누리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은 인천 차이나타운 바로 옆이다.자유공원, 차이나타운 등이 다 붙어있다고 해도 될 듯 싶다. 그리고, 그 아랫편에는 개항기와 1930~40년대에 세워진 건물들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인천 아트플랫폼이 있다. 이곳에서는 종종 드라마.. 더보기
서울의 비밀정원, 백사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뒷편에 숨겨진 보물같은 곳이 있다.서울 시내도심에서 1급수에만 산다는 도룡뇽이 사는 곳.... 백사실, 백사동, 백사골, 백석동천, 등으로 불리는 이곳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의 별장이 있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있다.이항복의 호가 백사(白沙)이기에 이곳을 백사동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하지만, 이곳이 정말 이항복의 별장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원래 세검정과 부암동 주변에는 옛 흥선대원군의 별장을 비롯해서, 조선시대, 권력자들의 별장들이 여럿 있던 곳이다. 여튼, 백사실 한 켠에는 옛 집터와 연못터가 아직 남아있다. 부암동 산모퉁이 카페에서 10분 남짓거리에 있는 백사실은 공해에 찌든 서울시내에 있는 별천지임에는 분명한 듯 하다. =======================.. 더보기
아픈 기억을 잊고 카페거리가 된 부암동 서울 종로구 부암동은 청와대 뒷편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동네이다.1968년 1.21사태로 알려진 김신조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김신조가 포함된 북한의 124군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목표로 침투하여 치열한 교전을 이 일대에서 치렀다.31명이니까, 거의 특수부대 1개 소대병력이 쳐들어왔던 것이다. 당시 교전 중에 전사한 최규식 당시 종로경찰서장의 동상이 바로 근처에 서 있다. 하지만, 현재는 브런치 카페들이 있는 카페거리가 되었다. 바로 옆에는 창의문이 있다.자하문이라고도 불리는 창의문은 태조가 서울성벽을 쌓을 때 만든 사소문(四小門)의 하나이며, 현재 유일하게 완전히 남아있는 문이기도 하다. 서울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마치 이곳이 서울이 아닌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부암동에서 가장 유명한 곳.. 더보기
한남동 골목길, 해맞이길 서울에는 두개의 얼굴을 지닌 동네들이 참 많다.성북동, 이태원, 한남동, 등이 대표적이다. 성북동이나 한남동에는 재벌들이 많이 산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도 한남동에 산다.그래서, 한때는 한남동을 도둑촌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정반대의 삶이 있는 곳이 또한 그곳이다.성북동, 이태원, 한남동은 모두 한켠은 엄청난 부촌이지만, 다른 한켠은 아직도 좁은 골목으로 연결된 저소득층의 동네이다. 엄청난 빈부의 차이가 존재하는 동네이다. 강건너 보이는 강남과는 완전히 다른 동네인 셈이다. 아직 옛 골목길의 정취가 남아있는 이곳을 '한남동 해맞이길'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보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멀리 보이는 비싼 아파트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한남동 해맞이길은 낭만을 지닌 해맞이.. 더보기
노을 속에 들른 격포항 변산반도 서쪽에 있는 격포항은 조선시대에 전라우수영 관할의 격포진이 있던 곳이다. 현재는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어, 어선들이 드나드는 항구이다. 부안솔섬에서 일몰을 담고, 귀경하는 길에 바로 옆, 격포항에서 노을과 야경을 잠시 담았다. 어두워지는 시간에도, 가족들과 산책을 하는 이들, 밤낚시를 하러 나온 이들.... 격포항의 낮은 그렇게 긴가보다... 주변에는 채석강, 적벽강, 수성당, 등의 관광지가 많아, 이곳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