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 기록/서울 97

김포공항 옆에서 비행기를 담는 오쇠동

서울 강서구 오쇠동은 부천과 맞닿은 곳으로, 김포공항 바로 옆이다. 김포공항으로 내리고, 오르는 비행기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오랜 시간, 비행기 소음에 지친 이곳은 아직 일부 주민들이 남아있지만, 이제 폐허만 남은 동네이다. 이곳은 저녁 시간, 비행기 궤적을 담을 수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많은 진사들이 비행기 궤적을 담으러 오는 곳이다. 하지만, 나의 귀차니즘은 밤시간까지 황량한 이곳에 있기를 거부한다... ^^;;; ========================== | 불펌 금지 | ==========================

서울이지만, 서울같지 않은 곳, 항동 기차길

서울 구로구 항동이라는 동네가 있다. 서울과 부천이 마주하는 서울의 끝에 있는 동네다. 이곳에 작은 기차길이 있다. 오류동역에서 갈라져 나온 항동철길의 원래 이름은 오류동선이다. 1959년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KG케미컬)가 원료 및 제품 운송을 위해 만든 철로이다. 현재도 하루에 두세차례 운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마주치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시민들의 산책길로, 사진출사지로 더 사랑받는 듯 싶다. 한때는 레일바이크로 만든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소문은 역시 소문일 뿐인 듯 싶지만,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과연 언제까지 이를 그대로 놔둘지 모르겠다. 여름에는 모기가 너무 많으니, 밤에 갈 때는 만반의 대비를 해야할 듯 싶다... ===========..

한국 최초의 민간박물관, 간송미술관

서울 성북구 성북동 성북초등학교 옆에 있는 간송미술관은 간송 전형필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박물관이다. 1966년 간송 전형필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이를 정리/연구하기 위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부설기관으로 발족되었으며 원래 이름은 보화각이다. 보화각은 간송이 우리나라의 주요 미술품과 국학자료들이 일본과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들여 이들을 수집하여 보관하기 위해 1938년에 지은 건물이다. 그의 생전에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으나, 1962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966년에 간송미술관이 개관하고, 1971년 겸재전을 시작으로 매년 봄과 가을에 각 1회씩, 연 2회 일반에 공개된다. 원리 그는 종로의 거부 전응기의 상속자로, 그 역시 당시 거부였다. 일제강점기에 사재를 털어 국..

잊혀진 폐 놀이공원, 용마랜드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용마랜드는 1983년에 개장하였지만, 영업부진으로 2011년 초에 폐장된 놀이공원이다. 공식적인 폐장은 2011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전에 폐장된 곳이다. 더이상 움직이는 바이킹도 없고, 작동되는 놀이기구도 없다. 회전목마는 손으로 밀면 돌아는 간다... 비록 폐장되었지만, 입장료는 내야한다... ^^ 모두 버려진 이곳은 이제 몇몇 사진 동호인들과 영화나 광고 촬영을 위해 찾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 | 불펌 금지 | ==========================

작지만, 대한제국의 정궁이었던 덕수궁

서울시청 바로 앞에 있는 덕수궁...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6학년 마지막 어린이날을 보냈던 곳인데... ^^; 예전에는 고궁에서 교내미술대회같은 것을 많이 했다. 그래서, 덕수궁하면, 내게는 그런 기억만 남아있는 듯 하다. 원래 덕수궁은 궁궐로 지었던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으로 의주까지 피난을 갔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와 임시거처로 사용하며 정릉동행궁이라 하였다. 선조는 이곳을 행궁으로 삼고,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 광해군도 이곳 덕수궁에서 즉위하였다. 즉위 후, 창덕궁을 보수하여 거처를 옮긴 후, 경운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인목대비가 폐위된 뒤에 이곳에 유폐되어, 당시에는 이곳을 서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인조도 이곳에서 즉위하였으나,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기고, 원래의 주인에게 가옥과 대..

한강대교가 내려다보이는 흑석동전망대

한강대교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을 대개 흑석동전망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노량진동이다. 한강대교 남단에서 흑석동 방향 큰길 옆에 골목으로 올라 용봉정근린공원으로 올라, 주차하고, 우측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한강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나름 입소문으로 많이 알려진 곳이라, 항상 누군가가 삼각대를 펼쳐놓고 있다. ========================== | 불펌 금지 | ==========================

청량리 뒷편에 흔적으로 남아있는 여인숙골목

요즘은 낯선 이름이 되어버린 이름, 여인숙..... 요즘이야 웬만하면 다 호텔과 모텔이지만, 예전에는 호텔>장급 여관>여관>여인숙 으로 등급이 나뉘었었다. 학생시절에 여행을 다니다보면, 저렴한 여인숙이 가장 만만했었다. 비록, 공용 화장실과 세면실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긴하지만... 그러나, 언젠가부터 여인숙을 보기 어려워졌다. 청량리역 뒷편 전농동에 여인숙들이 줄지어있는 여인숙골목이 아직 남아있다. 원래 청량리역을 오가는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던 이곳 여인숙골목에는 한떄 40개가 넘는 여인숙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빛바랜 여인숙 간판이 이 골목의 쇠퇴를 알려준다. 여인숙골목에서 여인숙을 담은 사진은 별로 없네... ㅠㅠ ========================== | 불펌 금지 | ==..

강남 한복판에 있는 봉은사

지금은 서울 도심 한복판이 되어버린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는 통일신라 원성왕 10년(794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당시에는 견성사라고 하였으나, 연산군 시절에 정현왕후가 선릉을 위하여 중창하고 이름을 봉은사로 바꾸고, 명종 17년 (1562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중종 떄는 이곳에서 승과 시험을 치렀고,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도 이곳에서 등과하였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 불에 탔으나, 숙종 떄에 중건되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도 전각들이 파괴되었으나, 다시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아마도 강남 학부모들이 불공 드리는 곳으로 더 붐비지않나 싶다... 이곳에서 가장 많이 담는 사진은 대형 불상 뒷편에서 마치 부처가 시내를 보는 듯이 담는 사진일 것이다. 뒷편 기슭을 따라 올라가서 불상 뒷편에서 담..

청계천 #2 (청계문화관에서 동대문방향)

무교동 청계광장부터 시작해서 중랑천으로 합류하는 곳까지의 거리는 꽤 멀다. 그래서 청계천을 하루에 끝에서 끝까지 다 걸어가면서 담기는 쉽지 않다. 대개 청계천 출사를 가게 되면, 청계광장부터 삼일빌딩, 내지는 세운상가근처까지의 구간을 담곤 한다. 하지만, 황학동 시장이나, 청계문화관에서 시작해서 동대문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무교동과 같은 현대식 건물에 둘러쌓인 모습 대신에, 시장과 상가건물로 둘러쌓인 모습이 되레 더 정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 | 불펌 금지 | ==========================

청계천 #1 (청계광장에서 동대문 방향)

예전에는 서울 시내 곳곳에 개천이 있었다. 청계천도 그런 여러 개천 중 하나로, 서울 분지의 여러 개천들이 합류하여, 동쪽으로 흘러 중랑천으로 합쳐지고, 다시 한강으로 빠지는 개천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서울시내의 모든 개천들은 그 위에 뚜껑을 덮었다. 지금은 그냥 길로 알고 지내는 많은 길들 아래로 개천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서울시민도 이제 몇 안 될 것 같다. 청계천도 뚜껑을 덮었었다. 복개공사를 통해, 청계천은 도로가 되었고, 그 위로 고가차도가 설치되었다. 한때는, 미군들은 청계천을 가지 말라는 지시가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복개된 청계천의 지하에 가스가 차서, 폭팔할지도 모른다는 유언비어가 정설로 믿기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가, 이명박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청계천을 복원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