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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인천의 멋진 근대건축물, 답동성당 인천 중구에 있는 답동성당은 1897년에 건축된 성당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의 하나이다. 이후 1937년에 증축되었으나, 한국전쟁당시 훼손된 부분을 복원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성당이다. 현재는 인천교구 내 102개 본당의 주교좌 성당이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강화읍에 있는 한옥성당, 성공회강화성당 강화도 강화읍내에 위치한 성공회 강화성당은, 용흥궁 뒤, 강화고려궁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1896년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신자가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에 한국 최초로 세운 성공회성당이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한옥으로 지은 성당이라는 것이다. 다른 지역보다 성공회가 일찍부터 자리잡은 강화도에는 이곳, 강화읍의 강화성당 외에도, 온수리에 있는 성 안드레성당이 한옥으로 건축된 성당이다. 온수리 성 안드레성당과 다른 점은, 아직도 이곳에서 미사를 본다는 점이다. 일요일 오전에 들렀을 때, 때마침, 이 오래된 한옥성당에서는 미사가 집전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진을 책 표지로 사용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출간한 성공회 서적.... ^^* 꼭 절에서만 예불시간 맞춰 타종을 하는.. 더보기
고려시대 최우의 호국사찰이었던 선원사지 강화도의 선원사지는 선원사라는 사찰이 있던 폐사지이다. 지금은 공터로 남아있고, 그 옆에 새로이 선원사라는 이름의 절이 들어섰지만,원래 선원사는 얼마전 드라마 '무신'에 나왔던, 최충헌의 아들 최우의 호구사찰로 창건된 사찰이다. 이곳에 팔만대장경 목판을 보관하며, 고려시대에는 순천 송광사와 함께 2대 선사의 하나였으나, 조선 초에 폐허가 되어버린 곳이다. 유적으로 남아 볼 것은 별로 없지만, 이곳 길 건너에는 연밭이 조성되어 있어, 매년 연꽃축제를 치른다. 대개 7월말부터 8월초까지 연꽃이 만개하지만, 초여름에 먼저 피는 수련을 만날 수도 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봄을 가장 먼저 만나는 곳, 순천 금둔사 순천에 있는 금둔사는 그리 널리 알려진 절은 아니다. 주변에 워낙 유명한 사찰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절이다. 하지만, 이곳은 홍매화가 가장 일찍 피어, 봄을 알려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금둔사가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을 뿐이다.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도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당시에도 금둔사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이후 폐사되었다가, 1984년 이후에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금둔사는 사찰로 유명하기 보다는 홍매화를 가장 일찍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비록 매화랑 동백만 담았지만, 이곳은 절이다. ^^; ========================== | 불펌 금지 | =============.. 더보기
나주 노안성당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의 금암마을에 있는 노안성당은 1910년에 부지를 매입하여 초가성당을 세웠다가, 1908년에 지은 벽돌조 사제관을 1927년에 서구식 성당으로 확장하여 만든 성당이다. 외관은 작지만 오래된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내부는 근래에 새로 치장을 한 듯, 다른 오래된 성당의 분위기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노안성당을 방문하였을 때, 성당 뒷편에서는 무슨 공사를 하려는지, 공사장비가 놓여있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진 후에 도착해서 제대로 살펴보지는 못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한국인 신부에 의해 세워진 예산성당 1933년에 착공하여 1934년에 완공된 예산성당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근대식 성당건물이다. 대부분의 초기 성당건물은 외국인 신부들에 의해 지어졌다. 그러나, 예산성당은 한국인 신부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남한강변의 신륵사 대부분의 절들은 산 속에 있다. 그래서 산길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남한강변에 있는 여주 신륵사는 주차장에서 절까지 그냥 평지다. 그래서 내게는 딱 맞는 절이다... ^^;;; 여주 8경의 하나인 신륵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정확지는 않다. 하지만, 고려말 우왕시절에는 200여칸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에는 꽤 큰 사찰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담은 일몰사진,그리고 겨울의 일출과 상고대 사진을 보았지만, 일출은..... 내게는 조금 힘든... ^^;;; ========================== | 불펌 금지 | ========================== 더보기
흔적만 남은 조선 최대의 사찰, 회암사 경기도 양주에 있는 회암사는 폐사지이다. 지금은 그 옆에 다시 같은 이름의 사찰이 들어섰지만, 원래 이곳은 절터만 남아있던 곳이다. 예전에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용의 눈물'이나 '여인천하'에도 등장했던 회암사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언제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고려 충숙왕때 중창되고, 우왕 떄 중건된 회암사는 대규모 사찰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묵던 곳이기도 했던 회암사는 조선 초기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이성계가 자주 들렀던 곳이기에, 회암사의 구조는 일반 사찰과는 달리,궁궐과 비슷한 구조를 지녔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물론, 효령대군도 이곳에 머물렀었다고 하며, 세종 때의 기솔에 의하면, 1만평의 경내에 250명의 승려가 머물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성.. 더보기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찾아가던 청평사 학교때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가던 청평사... 하지만, 이제는 차를 운전해서 갈 수 있다.화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옛 추억을 생각하며 들렀다. 청평사는 원래 고려 광종때 창건되었다고 한다.처음에는 백암선원이라고 불리었으나, 이후 폐사되었다가, 고려 선종때 이자현이 이곳에 들어와 절을 다시 짓고 문수원이라고 이름을 짓고 선(禪)을 즐겼다고 한다. 이때부터, 주변에 호랑이와 이리가 사라져 평화롭게 되었다고 하여, 청평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기억에는 배에서 내려서 금새였던 것 같았는데, 아니네..... 1Km 가량 계곡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통도사의 큰 암자, 극락암 극락암은 통도사 19 암자중 하나이다.통도사에서 1.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극락암은 근현대의 고승인 경봉스님이 주석하셨던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시대였던 1344년에 창건된 극락암은 암자로서는 꽤 큰 규모를 지니고 있다. 특히, 암자 압에 있는 극락영지라는 연못은 뒷편 영취산(영축산)의 봉우리가 비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통도사의 뒷산인 영축산은 그동안 영축산, 영취산, 취서산, 축서산 등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이를 2001년 1월 양산시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통일하기로 하여 공식적으로는 영축산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어떤 자료에는 영축산, 어떤 자료에서는 영취산...헷갈렸는데... ^^; ========================== | 불펌 금지 | ========================== 더보기
푸른 빛의 옥천성당 충북 옥천에 있는 옥천성당은 푸른 빛의 성당건물이 매력적인 곳이다. 원래 옥천성당은 공주본당의 옥천공소로 시작된 곳이다. 현재의 옥천성당은 1945년에 세워진 건물로, 지방의 성당건축의 전형으로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현재 충북에 남아있는 유일한 1940년 성당건축몰로서,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며, 이후의 성당건축에 많은 영향을 끼친 건물이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강원도 원주시의 거돈사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거돈사지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고 하지만, 정확히 언제 창건되어 언제 폐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고려 초기, 고려 불교의 중심이었던 법안종의 주요 사찰로서, 꽤 커다란 사찰이었으나, 후에 천태종으로 흡수되었다고 전해진다. 약 7,500평에 달하는 절터의 규모에서도 그 옛날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여주 고달사지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녔던 종교가 불교지만,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로 인해 박해를 받았던 종교가 불교다.그런 이유인지, 우리나라에는 사찰도 많지만, 잊혀진 절터, 즉 폐사지도 참 많다. 고달사지는 말 그대로 고달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이다. 고달사는 서기 764년 신라 경덕왕 시절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도 광종을 비롯해 여러 왕들의 비호를 받았고, 사방 30리에 걸쳐 수백명의 스님들이 머물었었다는 대규모 사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폐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기록이 없다. 지금도 발굴조사의 흔적과 드넓은 터만 남았을 뿐이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시골마을에 숨어있는 아담한 옛성당, 금사리성당 부여에 작고 이쁜, 하지만 오래된 성당이 하나 있다. 바로 금사리성당이다.금사리라는 작은 마을 뒷편에 자그마하게 숨어있는 금사리 성당은 그냥 국도를 지나가면서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곳이다. 충남 기념물 제143호로 지정된 이 성당은 현재 사용되지는 않는다. 바로 옆에 1968년에 새로 지은 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1901년에 공주본당으로부터 분리된 금사리성당은 당시에는 홍산성당, 혹은 소양리성당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1901년에 착공하여 1906년 4월에 완공된 이 성당도 중국기술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초기에 세워진 오래된 성당들이 대개는 크고 멋지게 지어진 성당들이 많지만, 금사리성당은 작고 아담하게 지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웬지 정이 많이 가는 성당이다. ======================.. 더보기
강화도 온수리의 한옥 성당, 성공회 성 안드레성당 강화도에는 유난히 성공회 성당이 많은 것 같다. 성공회가 한반도에 진출한 것은 가톨릭이나 개신교보다 훨씬 늦은 1890년이었다. 이미 서울에는 개신교의 장로교와 감리교가 정동교회를 중심으로 주도권을 잡고 있었기에, 성공회는 제물포에 자리를 잡고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렇다고, 서울을 포기할 수 없기에 정동에 집을 마련하여 선교를 하였다. 제물포와 서울을 오가며, 성공회가 눈을 뜬 곳이 강화도이다. 그래서 성공회는 초기에 강화도 선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런 이유인지, 강화도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서 유난히 성공회 성당이 자주 눈에 띈다. 이곳 온수리의 성 안드레 성당은1906년에 세워졌다. 우리날 전통 한옥의 건축양식에 교회양식을 결합한 독특한 형식의 성당이다. 성 안드레성당은 인천광역시 유형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