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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능침 보호를 위해 중창되었던 봉선사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봉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구 본사이다. 고려 광종 20년(969년)에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하여 운악사라고 하였으나, 이후 조선 세종 때, 이전의 7종을 선교양종으로 통합하면서 혁파되었다가, 1469년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가 세조를 추모하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중창한 뒤, 봉선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당시 현판은 예종이 직접 썼다고 하며, 이 해에 범종도 주조되었다고 한다. 1551년에는 선교양종 중, 교종의 수사찰로 지정되어 조선 불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으나, 임진왜란 당시에 전소된 것을 1593년에 주지 낭혜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사찰보다는 봉선사 주차장 옆에 크게 조성된 연밭이 더 눈길을 끌었다. 오리들 노니는 모습을 장노출로도 담아보고... ^^;;;.. 더보기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였으나, 폐사된 성주사지 충남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는 신라말에는 전국 최고의 사찰이었던 곳이다. 원래 백제시절에 오합사라는 절로 창건되었으나, 신라말 낭혜화상에 의해 중창되어, 신라말에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파의 중심사찰로 한때 2,500명 가량의 승려가 머물던 곳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 불에 타고, 이후 중건하지 못하여, 현재는 폐사지로 남게 되었다. 현재는 최치원의 사산비문의 하나로 국보 제8호로 지정된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와 석불을 비롯한 일부 석조물만 남이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고려시대 최우의 호국사찰이었던 선원사지 강화도의 선원사지는 선원사라는 사찰이 있던 폐사지이다. 지금은 공터로 남아있고, 그 옆에 새로이 선원사라는 이름의 절이 들어섰지만,원래 선원사는 얼마전 드라마 '무신'에 나왔던, 최충헌의 아들 최우의 호구사찰로 창건된 사찰이다. 이곳에 팔만대장경 목판을 보관하며, 고려시대에는 순천 송광사와 함께 2대 선사의 하나였으나, 조선 초에 폐허가 되어버린 곳이다. 유적으로 남아 볼 것은 별로 없지만, 이곳 길 건너에는 연밭이 조성되어 있어, 매년 연꽃축제를 치른다. 대개 7월말부터 8월초까지 연꽃이 만개하지만, 초여름에 먼저 피는 수련을 만날 수도 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봄을 가장 먼저 만나는 곳, 순천 금둔사 순천에 있는 금둔사는 그리 널리 알려진 절은 아니다. 주변에 워낙 유명한 사찰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절이다. 하지만, 이곳은 홍매화가 가장 일찍 피어, 봄을 알려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금둔사가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을 뿐이다.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도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당시에도 금둔사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이후 폐사되었다가, 1984년 이후에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금둔사는 사찰로 유명하기 보다는 홍매화를 가장 일찍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비록 매화랑 동백만 담았지만, 이곳은 절이다. ^^; ========================== | 불펌 금지 | =============.. 더보기
남한강변의 신륵사 대부분의 절들은 산 속에 있다. 그래서 산길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남한강변에 있는 여주 신륵사는 주차장에서 절까지 그냥 평지다. 그래서 내게는 딱 맞는 절이다... ^^;;; 여주 8경의 하나인 신륵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정확지는 않다. 하지만, 고려말 우왕시절에는 200여칸에 달했다고 하니, 당시에는 꽤 큰 사찰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담은 일몰사진,그리고 겨울의 일출과 상고대 사진을 보았지만, 일출은..... 내게는 조금 힘든... ^^;;; ========================== | 불펌 금지 | ========================== 더보기
흔적만 남은 조선 최대의 사찰, 회암사 경기도 양주에 있는 회암사는 폐사지이다. 지금은 그 옆에 다시 같은 이름의 사찰이 들어섰지만, 원래 이곳은 절터만 남아있던 곳이다. 예전에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용의 눈물'이나 '여인천하'에도 등장했던 회암사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언제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고려 충숙왕때 중창되고, 우왕 떄 중건된 회암사는 대규모 사찰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묵던 곳이기도 했던 회암사는 조선 초기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이성계가 자주 들렀던 곳이기에, 회암사의 구조는 일반 사찰과는 달리,궁궐과 비슷한 구조를 지녔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물론, 효령대군도 이곳에 머물렀었다고 하며, 세종 때의 기솔에 의하면, 1만평의 경내에 250명의 승려가 머물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성.. 더보기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찾아가던 청평사 학교때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가던 청평사... 하지만, 이제는 차를 운전해서 갈 수 있다.화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옛 추억을 생각하며 들렀다. 청평사는 원래 고려 광종때 창건되었다고 한다.처음에는 백암선원이라고 불리었으나, 이후 폐사되었다가, 고려 선종때 이자현이 이곳에 들어와 절을 다시 짓고 문수원이라고 이름을 짓고 선(禪)을 즐겼다고 한다. 이때부터, 주변에 호랑이와 이리가 사라져 평화롭게 되었다고 하여, 청평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기억에는 배에서 내려서 금새였던 것 같았는데, 아니네..... 1Km 가량 계곡을 따라 들어가야 한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여주 고달사지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녔던 종교가 불교지만,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로 인해 박해를 받았던 종교가 불교다.그런 이유인지, 우리나라에는 사찰도 많지만, 잊혀진 절터, 즉 폐사지도 참 많다. 고달사지는 말 그대로 고달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이다. 고달사는 서기 764년 신라 경덕왕 시절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도 광종을 비롯해 여러 왕들의 비호를 받았고, 사방 30리에 걸쳐 수백명의 스님들이 머물었었다는 대규모 사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폐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기록이 없다. 지금도 발굴조사의 흔적과 드넓은 터만 남았을 뿐이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영창대군의 원찰로 삼았던 칠장사 경기도 안성 칠현산에 있는 칠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서기 636년(선덕여왕 5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지며. 이후 고려 현종 5년에 혜소국사 중창한 사찰이다. 공민왕 때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불탔으나, 조선 중종 때 다시 중건되었다.이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난 후, 인목대비가 자신의 아버지인 김제남과 아들인 영창대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원찰로 삼으면서 크게 중창하였으나, 이후에도 불에 타고, 다시 중건되기를 반복한 곳이다. 또한, 어사 박문수가 과거를 보기위해 한양으로 올라오던 도중에 이곳에서 하루 묵으며 기도를 한 후, 꿈에 혜소국사가 나타나 과거시제중 7행을 읊어주었고, 나머지 1행을 채워 장원급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래서, 매년 입시철이면 학.. 더보기
십리벚꽃길로 유명한 하동 쌍계사 매년 남쪽의 꽃소식이 봄소식을 제일 먼저 전해준다.남쪽 꽃소식 중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벚꽃이다. 밪꽃축제는 당연히 진해군항제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벚꽃만큼이나 사람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그보다 조금 덜할지는 몰라도, 화계장터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쌍계사 십리벚꽃길도 그에 못지않다. 대개는 차를 타고 지나다보니, 사람에 치이는 것은 조금 모면해보지만,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차가 밀려 고생이다. 광양 매화마을에 간 김에 쌍계사까지 들렀었다. 하지만, 나오는 길이 너무 밀려, 다른 일정이 다 망가져버렸다... ㅠㅠ 쌍계사가 벚꽃에 밀린 느낌이지만, 쌍계사도 큰 절이다. 벚꽃이 다 진 후에도 들르게 되는 곳이 쌍계사이다. 쌍계사는 신라시대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이 창건한 고찰이며, 현재 .. 더보기
낙조로 유명한 강화팔경의 하나, 적석사 강화도의 적석사는 고구려 장수왕 시절에 인도 승려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적련사였다고 한다. 인도 승려가 절터를 물색하다가 강화 고려산에서 다섯빛깔의 연꽃을 발견하고, 이들을 공중으로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지었는데, 붉은 적련이 떨어진 곳에 지은 절이라고 해서, 적련사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이름이 적석사로 바뀌었으나, 임진왜란 당시에 소실되었다. 이후 다시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한 역사보다도, 적석사는 강화8경의 하나로 낙조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단....계절을 잘 맞춰 겨울에 가야한다. 아니면, 산너모로 지는 태양에 아쉬움만 남게 된다. 우리가 갔을때는 여름...유명한 적석사의 낙조를 볼 수 없었다.다음 겨울에 적석사를 다시 가봐야 할 듯 싶다. ==.. 더보기
은진미륵상이 유명한 관촉사 충남 논산의 관촉사는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곳이다. 고려 광종 때 공사를 시작하여 혜종 때 완공되었다고 하며, 은진미륵 머리위의 갓에 놓인 화불이 워낙 밝아, 송나라의 지안대사가 찾아와 예불을 했다고해서, 관촉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두개의 대웅전이 있는 칠갑산 장곡사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 기슭에 있는 장곡사는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원래 통일신라 문성왕 12년 (850년)에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하였다고 한다.하지만,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근세에 개축되거나 재건된 건물들이다. 장곡사의 가장 큰 특징은 대웅전이 2개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절에는 중앙에 대웅전이 하나 있지만, 장곡사에는 아래쪽에 하나, 윗쪽에 하나...하(下)대웅전과 상(上)대웅전이 있다. 이렇게 두개의 대웅전이 있는 절은 우리나라에서 장곡사가 유일하다. 원래 2개의 절이 하나로 합쳐진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장곡사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어머님들의 정성은 대단하다... 장곡사의 주지스님은 참 재밌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그 분의 장난끼인지, 어디서도 볼 수.. 더보기
권율장군이 쌀로 말을 샤워시켰다는 독산성 세마대 오산에 있는 독산성은 임진왜란 당시에 권율장군이 왜군을 물리친 산성이다. 산성의 입구에는 보적사라는 사찰이 있고, 그 위편에는 세마대(洗馬臺)가 있다. 독산성산림욕장 방향으로 올라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성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보적사가 있다. 마치 산성이 보적사의 담과 같다. 보적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정식명칭은 보적사이지만, 세마대가 있어, 세마사라고도 한다. 세마대(洗馬臺)는 말 그대로 말을 딱은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곳에 물이 귀하지 않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권율장군이 쌀로 말을 닦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동탄신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평야지대에 홀로 솟아있는 산이라, 예전에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요즘 대부분의 산성들이 그렇지만, 이곳도, 성벽을 따라 .. 더보기
사천왕문 액자속의 무량사 극락전 충남 부여에 있는 무량사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사찰이라고 한다. 그러나, 창건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세상을 피해 있다가 죽은 곳이기도 하다. 무량사의 키 포인트는 사천왕문에서 바라보는 무량사 극락전일 것이다. 사천왕문 너머로 보이는 극락전은 마치 액자에 끼워진 그림같은 느낌이다. 중국과 일본에는 복층구조, 내지는 여러 층으로 만들어진 옛 건축물들이 많은데, 왜 우리만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무량사 극락전은 외관상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무량사 극락전은 조선 중기의 건물로, 밖에서 보면, 2층 구조로 되어 있지만, 내부에서 보면 그냥 단층구조이다. 극락전에는 당연히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그런데, 다른 절들과 달리, 부처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