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택

다시 찾은 남사예담촌 남사예담촌... 원래는 남사마을이다. 그런데, 담이 이쁘다고, 예담촌이라는 이름이 붙어서, 지금은 남사예담촌이라고 부른다. 지난 번 갔을 때에는 비가 오던 날이었다. 그래서 날씨 맑은 날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 하지만, 웬지 비오던 날이 더 좋았던 듯 싶은... ^^;;; 집집마다 봄꽃이 가득하다. 서울촌놈은 봄꽃구경이 고택보다 더 눈길이 가나보다... ^^;;; 한옥에는 역시 고무신이 어울리는 것일까..... ========================== | 불펌 금지 | ========================== 더보기
풍양조씨 호군공파의 종가, 상주 오작당 상주 양진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오작당이라는 고택이 있다.이 집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조정이 1601년 (선조 34년)에 현재의 양진당 자리인 요포(繞浦)에 지은 집으로, 1661년(현종 2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요기서 조금은 헷갈린다. 양진당 자리에 1601년에 세우고, 1661년에 이건했다는데, 양진당은 1626년에 지었다면, 아직 그 자리에는 오작당이 있었을텐데...모르겠다..... ㅠㅠ 당시에는 40칸이었으나, 현재는 안채, 사랑채, 그리고 가묘가 남아있다. 상주의 양진당과 오작당은 모두 조정이 지은 집들이다. 당시에 집장사가 있었을리 만무하고... ^^;학자이지만, 건축에도 참 관심이 많았었나보다... 양진당은 사람이 살고 있지않지만, 이곳 오작당은 아.. 더보기
풍양조씨 연수원, 상주 양진당 양진당을 검색하면, 안동 양진당이 많이 나온다. 류시원 이야기도.... 하지만, 양진당이 안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상주에도 양진당이 있다. 안동의 양진당은 종가집이지만, 상주의 양진당은 입구에 '풍양조씨연수원'이라는 팻말이 있다.(풍양 조씨는 학교때, 안동 김씨 중간에 잠시 외척 세도를 부리던 것으로 배운 듯 한데...) 상주 양진당은 검간(黔澗) 조정(趙靖)이 1626년 처가인 안동의 천전동에 있던 가옥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99칸이었으나, 23칸만 남은 것을 복원했다고 한다. 양진당은 흔히 보는 다른 전통 한옥과는 달리 건물 바닥이 땅에서 1미터 가량 높게 만들어져 있다. 1966년 대홍수 때, 사랑채가 쓰러졌다는 걸로 보아, 이곳이 자주 침수되었기에 그런 구조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 더보기
이제 곧 사라질 영주 금강마을 지난 수십년간 발전을 위해서, 홍수조절과 농업용수를 위해서, 등등의 이유로 수많은 댐들이 건설되었다. 댐들이 건설되면, 필연적으로 수몰지역이 생기게 된다.수몰로 고향을 잃은 이들은 또 다른 의미의 실향민이다. 경북 영주에 건설 중인 영주댐,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되고 있는 댐이다. 이 댐으로 인해 수몰될 지역 중의 하나가 금강마을이다. 영주댐이 바라보이는 바로 앞에 있는 금강마을은400년 전통의 안동 장씨 집성촌이다.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233호로 등록된 장씨고택을 비롯해서 고택들이 남아있는 이곳은 이제 세상에서 사라질 날만 기다린다. 이미 많은 이들이 떠나고, 빈집만 늘어나고 있는 이곳에는 연로하신 몇몇 노인분들만 아직 마을을 지키고 있다. 심원장이라는 이 고택은 마당에 연못을 만들어서 문화재 등록.. 더보기
전통한옥에 일본식이 절충된 청양 윤남석 가옥 청양에 있는 윤남석 가옥은 20세기 초에 세워진 고택이다.안채, 사랑채, 별채, 등으로 구성되는데, 별채는 일본식 양식이 가미된 2층으로 되어있다. 아마도 한때는 청양을 대표하던 집안이었겠지만, 세월이 지나며 버려져 있던 이 고택을 최근에 이 곳 외동따님의 남편되시는 분께서 아예 이곳으로 내려와 새로이 보수하며 옛모습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 11월경이면 공사가 마무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후, 고택 체험등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예정이다. 주인 분이 음악을 비롯해서 예술에도 관심이 많고, 좋은 분이라, 앞으로 이곳을 찾는 이들도 늘지 않을까 싶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중요민속자료로 등록된 보은군 선병국 가옥 시냇물이 양쪽으로 흘러 육지속 섬과 같은 곳에 위치한 선병국 가옥은 입구에 소나무 숲이 찾는 이를 맞이한다. 1984년에 중요민속문화자료 제134호로 지정된 고택이다.고종 40년(1903년)에 보성 선씨씨 가문의 선영홍이 이곳에 정착하고, 1919년부터 1924년까지 아들 선정훈과 함께 지은 집이다.이때 도편수로 참여한 이는 궁궐 목수였던 방대문이라고 한다. 전통 한옥의 양식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만, 개화기 일본 등의 영향을 받은 개량식 한옥으로로,제수채와 사당을 연결하는 복도채를 지니고 있다.현재는 안채, 사랑채, 사당 등이 남아있다. 이곳의 장맛은 꽤 유명하다고 한다.직접 담은 장을 판매도 한다는데,다음에는 한번 사와볼까...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개화기의 개량식 한옥, 선병국 가옥 충남 보은에 있는 선병국 가옥은 1984년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한옥으로 보성선씨 가문의 고택이다. 하지만, 선병국 가옥은 수백년 된 고택은 아니다.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집으로, 개화기 초의 개량식 한옥양식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민속문화재이다. 과거의 고택들과는 달리, 벽돌이 사용되었고, 사랑채나 안채의 크기도 다른 고택들보다 훨씬 크다. 또한, 복도채가 있어, 비바람이 쳐도 제례 등을 치루는데 지장이 없게 되어 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조선시대 사대부의 혼이 담긴 명재고택 명재고택은 숙종 때 소론의 지도자였던 명재 윤증의 집이다. 그래서 '윤증 선생 고택'으로도 불린다. 소론의 지도자였다는데, 윤증은 관직에 나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일종의 재야 지도자 같은 것이었나 싶기도 하지만, 노론 소론에 대해 잘 모르므로 패쓰..... ^^; 여튼, 명재고택은 조선시대의 사대부 가옥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그런 이유로, 조선시대 상류계층의 주택으로 학술적 가치도 높아, 이를 연구하는 이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명재고택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장독 항아리들이다. 항아리에 고인 물에 비친 반영들을 일단 시도해보았다. 우연히 마주친 주인분께서, 사랑채를 더 자세히 보여주며, 집 구조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는데, 워낙 무식한 관계로, 제대로 기억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