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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

경주 감은사지의 밤풍경 문무대왕릉 바로 옆에 있는 감은사지.....문무대왕 수중릉에 안장되어 용이 되어 나라를 지켰다는 문무대왕릉 용이 드나들었다는 감은사.....이제는 폐사지만 남았지만, 감은사지의 3층 석탑은 천년여의 세월을 이기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어떤 분들은 여기에서 별을 돌리기도 하지만, 그 정도의 정성은 없어, 그냥 야경만 담았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충남 당진의 안국사지 안국사지..... 안국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이다.지금은 3개의 석불이 이곳에 사찰이 있었던 것을 말해줄 뿐이다... 안국사의 정확한 창건시기와 폐사시기는 알려져있지 않다.백제말에 창건되었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고, 고려때 창건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고 한다.여튼, 고려시대에는 꽤 번창했던 사찰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후 1929년에 다시 일으켜세웠지만, 또다시 폐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폐사지에서 보듯이, 이곳에도 뒤늦게 세워진 신식 사찰건물이 들어서 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산기슭의 폐사지, 장항사지 감은사지에서 석굴암쪽으로 가는데, 저편 산기슭에 불탑이 보인다. 검색해보니, 장항사지석탑이라고 한다. (요즘은 스마트폰 덕분에 어디서건 바로 검색... 편한세상이다.) 이곳의 사찰에 대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절 이름도 모르고, 단지 그 동네가 장항리라서 장항리 사지, 혹은 장항사지라고 불린다고 한다. 하긴 저 가파른 산기슭에 작은 암자라면 모를까, 큰 사찰이 있긴 어려웠을 것 같다... 요즘 무르릎이 부실해서, 올라가는 건 포기.... ㅠㅠ다음에는 올라가봐야겠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문무대왕릉 근처에 있는 감은사지 문무대왕 수중릉 근처에 있는 감은사지는 감은사가 있던 폐사지로 3층석탑 2기가 남아있는 곳이다. 이들 석탑은 현존하는 석탑 중에서 가장 큰 석탑이라고 한다. 문무왕이 부처님의 힘을 빌어 왜구들을 격퇴하려 짓기 시작해서, 그의 아들인 신문왕 때에 이르러 완공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예전에는 그냥 방치되어 있던 것이, 이제는 나름 정비가 되어 있다. 관광해설사도 배치되어 있는 듯 싶고..... 그런데, 나는 문무왕이 부처님의 힘을 빌어 왜구를 물리치고자 했다는 이야기나,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이야기 등등을 들으면서 또 다른 의구심을 갖게 된다. 예전에 학교시절에 역사를 배우면서 일본은 옛날에 미개해서 우리 민족이 문물도 전해주고, 일깨워 줬다는 식으로 .. 더보기
아스라한 흔적만 남은 원주 법천사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있는 법천사지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에 번창했던 법천사가 있던 곳이다. 고려 중기 불교는 법상종과 화엄종의 양대교단으로 나뉘었는데, 법천사는 법상종계의 사찰로, 지광국사 해린이 수학하고 입적한 곳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 전소되고, 이후에 중창되지 못해, 터만 남게 되었다. 지금은 불에 타지 않은 지광국사현묘탑비, 부도전지, 당간지주 등의 석조물만 일부 남아있다. 원래 이곳에 있던 지광국사현묘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다보니, 엄한 개구리, 잠자리랑만 놀다 왔다... ㅠㅠ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이름모를 사찰의 폐사지, 물걸리사지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 있는 폐사지는 어떤 절이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 그래서, 다른 폐사지들과는 달리, 동네 이름을 따라 '물걸리사지'라고 불린다.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홍양사' 터라는 설도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단지, 남아있는 유물들을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될 뿐이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였으나, 폐사된 성주사지 충남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는 신라말에는 전국 최고의 사찰이었던 곳이다. 원래 백제시절에 오합사라는 절로 창건되었으나, 신라말 낭혜화상에 의해 중창되어, 신라말에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파의 중심사찰로 한때 2,500명 가량의 승려가 머물던 곳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 불에 타고, 이후 중건하지 못하여, 현재는 폐사지로 남게 되었다. 현재는 최치원의 사산비문의 하나로 국보 제8호로 지정된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와 석불을 비롯한 일부 석조물만 남이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스님들이 천주교신자를 돌봐주었던 천진암성지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천주교성지 천지암 천진암이라는 이름에서 눈치 챌 수 있겠지만, 이곳은 원래 불교 암자, 즉 불교사찰이 있던 곳이다.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온 천주교신자들을 천진암 스님들이 숨겨주고 보호해주었다고 한다.그때문에 스님들도 희생되고, 결국 천진암도 폐사되게 되었다. 스님과 사찰들을 저주하며, 종교인을 자처하는 몰상식한 인간들로서는 아마도 상상도 못할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또한, 이곳은 권철신, 정약용, 정약종, 이승훈, 등이 모여 천주학을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다.결국, 이 모임은 천주학이 천주교로 발전하게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그런 이유에서, 이곳은 한국 가톨릭이 태동한 성지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성당을 세우고, 성역화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성지라고, 카메라도 못 갖고 .. 더보기
고려시대 최우의 호국사찰이었던 선원사지 강화도의 선원사지는 선원사라는 사찰이 있던 폐사지이다. 지금은 공터로 남아있고, 그 옆에 새로이 선원사라는 이름의 절이 들어섰지만,원래 선원사는 얼마전 드라마 '무신'에 나왔던, 최충헌의 아들 최우의 호구사찰로 창건된 사찰이다. 이곳에 팔만대장경 목판을 보관하며, 고려시대에는 순천 송광사와 함께 2대 선사의 하나였으나, 조선 초에 폐허가 되어버린 곳이다. 유적으로 남아 볼 것은 별로 없지만, 이곳 길 건너에는 연밭이 조성되어 있어, 매년 연꽃축제를 치른다. 대개 7월말부터 8월초까지 연꽃이 만개하지만, 초여름에 먼저 피는 수련을 만날 수도 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흔적만 남은 조선 최대의 사찰, 회암사 경기도 양주에 있는 회암사는 폐사지이다. 지금은 그 옆에 다시 같은 이름의 사찰이 들어섰지만, 원래 이곳은 절터만 남아있던 곳이다. 예전에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용의 눈물'이나 '여인천하'에도 등장했던 회암사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언제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고려 충숙왕때 중창되고, 우왕 떄 중건된 회암사는 대규모 사찰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묵던 곳이기도 했던 회암사는 조선 초기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이성계가 자주 들렀던 곳이기에, 회암사의 구조는 일반 사찰과는 달리,궁궐과 비슷한 구조를 지녔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물론, 효령대군도 이곳에 머물렀었다고 하며, 세종 때의 기솔에 의하면, 1만평의 경내에 250명의 승려가 머물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성.. 더보기
강원도 원주시의 거돈사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에 있는 거돈사지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었다고 하지만, 정확히 언제 창건되어 언제 폐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고려 초기, 고려 불교의 중심이었던 법안종의 주요 사찰로서, 꽤 커다란 사찰이었으나, 후에 천태종으로 흡수되었다고 전해진다. 약 7,500평에 달하는 절터의 규모에서도 그 옛날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여주 고달사지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녔던 종교가 불교지만,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로 인해 박해를 받았던 종교가 불교다.그런 이유인지, 우리나라에는 사찰도 많지만, 잊혀진 절터, 즉 폐사지도 참 많다. 고달사지는 말 그대로 고달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이다. 고달사는 서기 764년 신라 경덕왕 시절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도 광종을 비롯해 여러 왕들의 비호를 받았고, 사방 30리에 걸쳐 수백명의 스님들이 머물었었다는 대규모 사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폐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기록이 없다. 지금도 발굴조사의 흔적과 드넓은 터만 남았을 뿐이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서산 마애삼존불상 바로 옆, 보원사지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보고 나와, 오던 길로 5분 가량만 더 들어가면 드넓은 폐사지가 보인다.그곳이 보원사지이다. 발굴을 위해 넓은 지역을 파헤쳐놔서, 금새 눈에 들어온다. 그 넓이만 봐도, 과거 보원사라는 절이 매우 큰 절이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발굴된 유물을 통해 보원사가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와 고려시대까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직도 남아있는 당간지주의 규모나, 석탑, 등의 흔적과 함께 한때는 1,000여명의 스님들이 수도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얼마나 큰 사찰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유적조사란 것이 그만치 힘든 것이겠지만, 저 퍼런 덮개는 정말 오래도 덮혀있다. 종종 다른 폐사지들도 마찬가지지만, 폐사지 옆에 옛 이름을 이어받아 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