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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이름모를 사찰의 폐사지, 물걸리사지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에 있는 폐사지는 어떤 절이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다. 그래서, 다른 폐사지들과는 달리, 동네 이름을 따라 '물걸리사지'라고 불린다.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홍양사' 터라는 설도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단지, 남아있는 유물들을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될 뿐이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제천 10경 중 제 9경, 탁사정 충북 제천에 있는 탁사정은 계곡 절벽 위에 세워진 정자이다. 조선 선조떄 제주수사를 지낸 임응룡이 귀하야하여 해송 8그루를 심고, 그후, 그의 아들 임희운이 정자를 지어 팔송정이라 했다고 한다. 1925년 후손 임윤근이 허물어진 정자를 다시 세우고, 의병좌군장 원규상이 탁사정이라 이름 붙였다. 제천 10경 중 제 9경으로 선정된 곳으로,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계곡이 참 멋진 곳이었을 듯 싶다.그러나, 현재는 계곡이 유원지가 되어, 그런 운치를 찾기는 어렵다는 것이 참 안타깝게 느껴진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였으나, 폐사된 성주사지 충남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는 신라말에는 전국 최고의 사찰이었던 곳이다. 원래 백제시절에 오합사라는 절로 창건되었으나, 신라말 낭혜화상에 의해 중창되어, 신라말에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파의 중심사찰로 한때 2,500명 가량의 승려가 머물던 곳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 불에 타고, 이후 중건하지 못하여, 현재는 폐사지로 남게 되었다. 현재는 최치원의 사산비문의 하나로 국보 제8호로 지정된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와 석불을 비롯한 일부 석조물만 남이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율곡 이이의 정자, 화석정 파주 임진강변 언덕위에 있는 화석정은 5천원짜리 지폐에서 종종 뵙는 율곡 이이이 즐겨 찾던 정자이다. ^^; 1443년(세종 25년)에 이이의 5대 조부인 이명신이 짓고, 1478년(성종 9년)에 증조부인 이의석이 보수하고, 이숙함이 '화석정'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율곡이 다시 중수하고, 자주 이곳을 들렀었다고 한다.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에 불타 없어졌고, 이후 1673년(현종 14년)에 이율곡의 후손들이 다시 지었으나, 한국전쟁 당시에 다시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되었던 전주 경기전 전주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태종 10년에 창건된 곳이다. 바로 앞에는 전동성당이 있고, 주변은 전주한옥마을이다. 그래서, 전주 한옥마을을 찾으면 대개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원래는 훨씬 규모가 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가 서쪽부지와 부속건물을 철거하고 일본인 소학교를 세워, 절반가량이 잘려 나갔다고 한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동막해수욕장 바로 옆, 분오리돈대 분오리돈대는 강화도 54돈의 하나로, 동막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는 돈대이다. 동막해수욕장 바로 옆이라, 사람들이 많이 들르는 돈대 중의 하나일 듯 한데, 관리는 생각밖으로 다른 돈대보다 덜 되어 있는 듯, 수풀이 무성하다. 바로 옆이 동막해수욕장이라서,그곳을 찾은 이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예전 이곳에서는 외국 선박의 침입이 한 눈에 들어왔겠지만.... ^^;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강화도령이 살던 용흥궁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용흥궁은 강화도령이라 불리는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살던 집이다. 하지만, 자신이 왕족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자랐던 철종이 이런 부티나는 집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원래 철종이 자란 집은 초가집이었다. 그러나, 인조, 영조와 같이 잠저에서 살다가 왕위에 올라 궁궐로 들어갔던 임금의 경우, 임금이 된 이후에 잠저를 다시 지었기에, 철종이 왕위에 오른 후, 다시 짓고, 이를 용흥궁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후에 잘 보존되지는 못했던 듯 하다. 현재의 모습은 1974년 보수한 이후의 모습이다. 하지만, 현재도 잘 관리되고 있지는 못한 듯 싶기도 하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어릴적, 북녘땅을 보던 강화산성 북문 어릴 적, 강화도에 큰아버님과 사촌형님이 사셔서, 명절때에는 강화도에 가곤 했다.그런 이유로 강화도는 참 많이 갔었지만, 정작 강화도 구경을 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한번 가봤던 강화산성 북문...그곳에서는 저 멀리 북녘땅이 보였었다. 그 기억을 갖고 다시 찾은 북문은 예전과 참 많이 변해 있었다.예전에는 앞을 가리는 나무가 별로 없어, 북녘이 그대로 보였었는데, 이제는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서, 예전같이 훤하게 보이지는 않게 되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금강변의 옥천 독락정 충북 옥천에 있는 독락정은 선조 40년에 절충장군중추부사를 지낸 주몽득이 세운 정자이다. 처음에는 정자로 지었지만, 이후에는 서당의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정자 앞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산들이 용이 춤추며 승천하는 기세라고 하여, 선비들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바로 앞에 정수장같은 커다란 시설물이 떡허니 자리잡고 있어, 멋진 경관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단지, 금강에서 낚시를 즐기는 몇몇 강태공들만 보일뿐.... ========================== | 불펌 금지 | ========================== 더보기
나주목사내아 금학헌 나주목사내아(羅洲牧使內衙)는 나주목사가가 묵던 살림집이다. 요즘식으로 얘기하면, 나주목사의 관저, 내지는 사택같은 곳이다. 이곳의 이름이 금학헌이다. 언제 지어졌는지는 확실치않지만, 대문옆 문간채가 고종 29년에 지어졌으니, 다른 건물들도 그 즈음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현재는 숙박 및 교육용으로 사용되는데, 나주에 들를 일이 있으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는 것도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명성황후만큼 평가가 오락가락하는 인물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어릴 적은 대원군을 높게 평가하고, 그의 정적인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부르며, 상대적으로 안좋게 평가하는 것을 교과서에서 배우며 자랐는데, 언젠가부터,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여장부로 그려지니 말이다. 뭐, 결국은 권력다툼 아니었을까? 그걸 포장하는 이들에 따라서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하는 것 같다.뭐, 민씨집안에도 민영환같이 자결까지 하며 항거한 사람도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호의호식한 인간들도 많으니 말이다.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는 그녀가 태어나 8살때까지 살던 곳이라고 한다. 원래 안채만 남아있던 것을 1996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바로 옆에는 기념관도 있다. 근데, 원래 명성황후가 어릴 적부터 대원군 집에 드.. 더보기
서울의 비밀정원, 백사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뒷편에 숨겨진 보물같은 곳이 있다.서울 시내도심에서 1급수에만 산다는 도룡뇽이 사는 곳.... 백사실, 백사동, 백사골, 백석동천, 등으로 불리는 이곳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의 별장이 있던 곳이라는 이야기가 있다.이항복의 호가 백사(白沙)이기에 이곳을 백사동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하지만, 이곳이 정말 이항복의 별장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원래 세검정과 부암동 주변에는 옛 흥선대원군의 별장을 비롯해서, 조선시대, 권력자들의 별장들이 여럿 있던 곳이다. 여튼, 백사실 한 켠에는 옛 집터와 연못터가 아직 남아있다. 부암동 산모퉁이 카페에서 10분 남짓거리에 있는 백사실은 공해에 찌든 서울시내에 있는 별천지임에는 분명한 듯 하다. =======================.. 더보기
신안 보물섬의 기억이 담긴 보물섬전망대 신안 앞바다에서 고려시대에 침몰된 배가 발견되고, 송나라와 원나라 시대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보물섬이 되어버렸던 증도... 그곳에는 당시에 발견된 유물들을 기념하는 보물섬전망대라는 곳이 있다. 당시에 발견된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해양유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이곳에는 그들의 모조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물섬전망대는 가장 아름다운 일몰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짧은 일정으로 이곳을 찾은 우리에게는 무리...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ㅠㅠ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조선시대에 축조된 고창읍성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고창읍성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성이다.워낙 옛 것이 잘 보존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는 읍성이다. 물론, 성안의 건물들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대신에 복원된 건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있다고 한다~~~ ^^;;; 막상 가서 들어가지는 않았다.일단 입장료를 받기에... ^^;;; 고창에서는 무병장수를 비는 성밟기놀이가 전해져 온다고 한다.저들도 성밟기놀이 중??? ^^; 바로 옆에는 조선후기의 명창 신재효의 생가가 있다. (요긴 공짜... ^^;) 고창읍성 앞에는 계속 뭔가를 짓고 있다.요즘은 보기 힘든 초가집이다. 그래도 아직 초가집을 어떻게 짓는지 아는 사람들이 남아있나보다... ========================== | 불펌 금지 .. 더보기
여주 고달사지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녔던 종교가 불교지만,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로 인해 박해를 받았던 종교가 불교다.그런 이유인지, 우리나라에는 사찰도 많지만, 잊혀진 절터, 즉 폐사지도 참 많다. 고달사지는 말 그대로 고달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이다. 고달사는 서기 764년 신라 경덕왕 시절에 창건된 사찰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도 광종을 비롯해 여러 왕들의 비호를 받았고, 사방 30리에 걸쳐 수백명의 스님들이 머물었었다는 대규모 사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폐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기록이 없다. 지금도 발굴조사의 흔적과 드넓은 터만 남았을 뿐이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