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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불에 탄 교회, 논산 채운당교회 논산에 있는 폐교회, 채운당교회는 화재로 인해 버려진 교회이다.2009년 경에 화재가 났다고 하는데,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 참 멋진 교회였을 것 같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흔적도 찾기 어려운 강경포구(황산포구) 대구, 평양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시장의 하나였던 강경... 강경포구는 내륙으로 수산물이 옮겨지는 요충지였다. 수많은 배들이 금강을 따라, 강경으로 들어왔었다.그래서, 강격은 내륙임에도 불구하고, 등대가 있었다. 또한, 뱃길을 따라 서양문물이 들어오기도 한 곳이다.천주교와 개신교가 들어온 곳도 이곳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금강하구댐이 생기면서 뱃길이 끊겼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황산나루도 1988년 황산대교가 준공되며 사라졌다. 이제는 옛 영화를 찾을 길도 없이, 복원되었다는 정체불명의 등대만 외로이 자리하고 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김장생이 후진을 교육하던 임리정 죽림서원 옆의 대나무숲 계단으로 오르면 나타나는 낡은 기와집이 하나 있다. 바로 임리정이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이곳 임리정에서,최명길, 송시열, 등의 스승이었던 김장생이 후진을 교육하였었다고 한다. 임리정 바로 옆에 무너진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와서, 그곳에 몇장.....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강경노동조합 건물 앞에서 점프놀이 지금은 쇠퇴했지만, 과거에는 번화했던 강경을 엿보게 하는 곳이 강경노동조합이다.일제강점기 시절, 당시 내륙의 수산물 공급과 유통의 중심이었던 강경에는 하역작업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의 노조가 있었다. 1925년에 이들이 지은 노조 건물이 강경노동조합 건물이다. 한때 조합원이 3천명에 이를 정도의 대규모 노동조합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2층으로 만들었었는데, 관리부실로 2층이 무너져, 현재는 1층만 남아있다. 역사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건물 안은 텅 비어있어, 그리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때마침 눈에 띈 바로 앞의 철문에서 점프놀이나... ^^;;; 위의 사진을 갖고, 뽀샵으로 조금 장난을.... ^^;;;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강경의 옛 중심, 중앙리 과거, 강경이 한창 번성하던 시절, 강경의 중심이었던 중앙리..... 그래서 이름이 중앙리인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지금은 한적한 길에 간간이 자전거만 지나가는 곳이 되어버렸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강경의 죽림서원 강경 죽림서원은 율곡 이이, 우계 성혼, 사계 김장생,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 우암 송시열 등의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인조 4년(1626년)에 세워진 서원이다. 처음에는 이이, 성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당시에는 황산사라고 불리었고, 이후에 황산서원이라 불리었다. 이후, 김장생이 추가되었고, 현종 6년(1665년)에 임금이 '죽림'이라는 이름을 받아, 이름이 죽림서원이 되며, 조광조, 이황, 송시열의 위패가 추가되었다. 대원군 시절에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가, 1965년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문이 굳게 닫혀있어, 들어가지는 못하고, 담장 너머로만 볼 수 있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벌판위의 돌다리, 미내다리 벌판에 웬 돌다리가 놓여있다. 강도 없고, 물도 안 보이는데..... 미내다리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돌다리이다. 3개의 아치형태로 만들어진 이 다리를 순전히 돌만 쌓아서 만들기 위해서는 역학을 공부해야 했을텐데..... 원래는 미내라는 하천이 있고, 이를 건너던 다리가 미내다리라고 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수로정비에 의해 물길이 바뀌면서 지금은 하천 위가 아닌 제방 위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강경 옥녀봉 아래의 폐창고 강경 옥녀봉에서 내려오면 저 편 너머에 폐창고가 보인다. 예전에 수산물이나 젓갈보관 창고였을 것 같은 이곳에서는 아직도 조금은 비릿한 냄새가 풍긴다. 하지만, 폐창고만의 느낌, 이곳만의 독특한 느낌이 다른 폐창고와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한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강경포구가 한 눈에 보였을 옥녀봉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에 있는 강경은 포구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곳이다. 그러나, 금강하구댐이 생기며 바닷길이 막혀, 이제는 포구가 없다. 하지만 옛 영화를 상상할 수 있는 곳이 옥녀봉이다. 옥녀봉에서는 옛 강경의 포구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원래 옥녀봉은 강경산이라고 불리었다. 그리고, 정상에는 정자와 함께 봉수대가 있다.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살아간다는 것이 살아간다는 것이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우리는 항상 가슴 한켠에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함께 있을 때는 웃지만,혼자 있을 때, 그 근심이라는 녀석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2013.03.10. 강경 ========================== | 불펌 금지 | ========================== 더보기
잊혀진 그곳, 강경 강경에 대해들어본 듯, 못 들어본 듯.....강경포구라고 해서, 바닷가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강경포구는 금강에 있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충청남도 논산에 속한다. 하지만, 금강의 남쪽에 있어, 전라북도와 더 통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하긴, 한때는 전라북도였다고 한다. 강경은 조선시대, 평양장, 대구장과 함께 조선 3대시장의 하나였던 곳으로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가장 번성했던 곳이라고 한다. 서해에서 잡힌 각종 수산물이 강경 포구로 들어왔고, 하루에 100여척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강경은 젓갈로 유명하다. 길을 다니면 온통 젓갈 가게와 식당이다. 하지만, 육상교통의 발전, 무엇보다도 금강하구댐의 건설은 강경포구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만들었다.이제 강경에 포구는 없다.포구가 있었다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