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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 기록/서울

한때는 비원으로 불렸던 창덕궁

창덕궁은 태종이 지은 궁궐로,
경복궁 이후에 지은 궁궐이다.


한때는 궁이 아닌 그냥 비원으로 불리기도 하였지만,
다시, 옛 이름인 창덕궁을 되찾았다.


비원은 창덕궁의 후원으로, 왕을 위한 정원이었다.
예전에는 창덕궁 전체가 시간에 맞춰서 안내원을 따라서 구경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비원만 예약제로 관람이 허용된다.


경복궁이 정궁이었지만,
많은 왕들이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을 더 선호하였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궐이라고도 불리웠던 창덕궁은
경복궁과 함께 임진왜란 때에 모두 불 타버렸다.


이후,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먼저 복원하였고,
창덕궁이 정궁으로 사용되었다.














낙선제는 어릴적만해도 들어갈 수 없었던 곳이었다.
왜냐하면, 이곳에 마지막 왕세자인 영친왕의 부인 이방자여사가 이곳에 계셨기 때문이다.


해방 후, 왕정복귀를 염려한 이승만의 반대로 귀국을 못하였던 영친왕은
1963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주선으로 국적을 회복하고 귀국한 후,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영친왕이 돌아가신 후에는 1989년 이방자 여사가 돌아가실 때까지 이곳에 계셨었다.


이방자 여사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일본인이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이방자 여사는 항상 한복차림으로
어려운 이들을 배려하는 따듯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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